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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찾아주는 사람들… ‘보청기 단 아빠’와 딸들

청각장애 2급 홍영희씨, 난청·보청기 센터 13년째 운영
작은딸 ‘청능사’로 같이 일해 큰딸은 언어치료 청각학 교수…
가난한 장애인 700여명에 무료로 보청기 나눠주기도

3일 오후 서울 종로5가의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 청각장애인의 난청 정도를 평가하고 청력에 따라 보청기를 맞춰 주는 곳이다. 2층 사무실에 홍영희(61) 대표가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가운 차림의 딸 하나(31)씨가 들어왔지만 홍 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빠. 손님이….” 하나씨가 팔목을 가볍게 잡고 이야기를 건네자 그가 뒤를 돌아봤다. “아, 오셨소. 제가 귀가 어두워서. 미안합니다.”

홍 대표는 2급 청각장애인이다. 청각장애는 1급이 없어, 2급이면 정도가 가장 심한 경우다.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잘 못 듣는 정도다. 시끄러운 지하철 플랫폼도 홍 대표에겐 고요한 공간이다.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한 홍 대표는 상대의 입술 모양을 세심히 읽어 소리의 ‘빈 곳’을 채운다.

사무실 곳곳에 귀 해부도가 걸려 있었다. 방음 시설을 갖춘 청력검사실 옆에 ‘보청위효(補聽爲孝)’라고 내려 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보청기를 맞춰갔던 한 지인이 ‘잘 듣도록 돕는 게 효도하는 길’이라며 써 준 겁니다. 글귀의 뜻처럼 난청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자고 애써 왔죠. 요즘은 젊은 난청인이 적지 않습니다.”

‘소리를 찾아주는’청능사 가족이 서울 천호동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에 모였다. 홍영희 대표(가운데 양복 입은 사람)가 큰딸
빛나씨, 처제 김정순씨, 작은딸 하나씨(오른쪽부터)와 함께 청력 테스트를 시연하며 웃고 있다.
‘소리를 찾아주는’청능사 가족이 서울 천호동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에 모였다. 홍영희 대표(가운데 양복 입은 사람)가 큰딸 빛나씨, 처제 김정순씨, 작은딸 하나씨(오른쪽부터)와 함께 청력 테스트를 시연하며 웃고 있다.

백마부대 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홍 대표는 귀청을 때리는 대포 소리에 고막을 다치면서 일상의 크고 작은 소리를 잃었다.

베트남에서 귀국한 홍 대표는 1972년 공무원이 됐다. 사무실에서는 상사가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건방지다’는 오해를 사기 일쑤였다.

병원에서 ‘중도 난청’ 판정을 받고 보청기를 착용한 게 1980년이었다. 당시 보청기 값은 80만원. 두 달치 월급을 털었다.

홍 대표는 보청기를 했지만 지직거리는 소리를 걸러주지 못하던 기계 탓에 ‘소음성 난청’으로 고생했다. 1996년 공직을 퇴직하며 그는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를 세웠다. 국내 청각 장애인이 20만명이나 되는데, 출력 조절이 제대로 안 돼 귀가 꽝꽝 울리는 보청기를 하고 다니는 장애인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3년 동안 센터에서 보청기를 맞춘 청각장애인은 3000여명. 홍 대표는 센터의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청각장애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순 없었다고 했다. 무료로 보청기를 건넨 장애인이 700여명을 훌쩍 넘었다고 했다.

홍 대표가 곁에 있는 하나씨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작은 아이도 여기서 저와 함께 청능사(聽能士·audiologist)로 일합니다. 난청 정도를 평가하고 보청기를 맞춰서 재활을 돕는, 쉽게 말하면 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해요. 참, 학위는 언제 받는다고 했지?”

아버지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한림대 대학원에서 청각학을 전공한 하나씨는 오는 19일 박사학위를 받는다. 논문 제목은 ‘한국 단음절어표(短音節語標)의 연령 및 난청 정도에 따른 특성 연구’. 난청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단음절어표라는 기준을 사용하는데 청각 장애인의 나이와, 장애 정도에 맞춰 적용이 가능한 어표(어휘 목록)의 특성을 연구한 것이다.

홍 대표의 맏딸 빛나(33)씨는 광주광역시의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지만, “난청을 연구하는 학문을 전공해서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며 진로를 바꿨다. 2006년 한림대 대학원에서 인공와우 이식이 반대쪽 귀에 착용한 보청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 대표의 두 딸은 어릴 적 늘 볼륨을 높이던 아버지를 기억했다.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라디오 교육방송을 듣는 아버지가 소리를 하도 키워 헤드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강의 내용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였죠.” “아버지의 주머니는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으로 가득했어요. 가게 주인에게 물건값 못 알아듣는다고 면박받지 않으려 늘 ‘큰돈’을 냈기 때문이죠.”

“장애등급 받은 청각장애인들에겐 5년에 한 번씩 보청기 구입비용 34만원이 나옵니다. 기초 수급자에게는 100% 나오고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에겐 80%를 지원해 줍니다. 하지만 보청기는 10만원짜리부터 500만원이 넘는 것까지 천차만별이에요. 이 정도 지원으론 턱도 없죠. 돈이 없다고 평생 소리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다니….”

그는 비장애인의 배려에 대해 강조했다. “청각장애인과 이야기할 때는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 말해야 합니다. 입 모양을 볼 수 있도록 얼굴 정면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