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소리나눔 “조언자로 지원군으로 늘 든든합니다”

‘잃어버린 소리 찾아주는’ 홍영희 대표 패밀리

30여 년간 청각 장애로 고통 받아 온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겪는 아픔과 어려움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 온 딸들이 있다.

아버지는 직접 보청기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고 큰딸은 언어치료청각학 교수, 작은딸은 청각학 박사가 되었다.

온누리 난청&보청기센터의 홍영희 대표와 그 가족들이다.

“난청 진단을 받고 보청기를 처음 낀 게 벌써 30여 년 전이네요.”(홍영희) 세월을 되짚어가는 홍영희 대표의 눈이 아련하다. 그도 한때는 남들처럼 건강한 귀를 가진 청년이었다. 하지만 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후 시종일관 귀청을 때리는 대포 소리 때문에 고막을 다친 후 점차 소리를 잃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서울시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게 가정도 꾸려나갔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의 귀도 점차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1982년 중도난청 진단을 받고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죠.” 보청기를 처음 낀 순간이었다. 거의 두 달 치 월급에 맞먹는 고가의 보청기였지만 소리를 제대로 걸러주지 못한 탓에 언제나 지지직거리는 소음성 난청이 그를 더 많이 괴롭혔다.

게다가 음향 되울림 문제나 출력 조절 문제 등 귀에 맞지 않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996년 공직을 은퇴하게 되었을 때 직접 보청기센터를 만들고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보청기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죠. 일일이 납땜하는 법도 배우고 보청기의 원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요. 마침 당시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한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청각학 연구 과정이 개설돼 본격적으로 청각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홍영희)

당시 그의 아내와 함께 의류 사업을 하고 있던 처제 김정순 씨도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왕 언니 일을 돕는 마당에 형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신다고 하니까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김정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차 형부가 느꼈었을 숱한 어려움과 불편함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그녀다. 홍 대표와 함께 청각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는 이후 홍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 천호점의 원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청능사·청각학 박사·교수 ‘모두 한 가족’

홍 대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건 김 원장만이 아니다.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두 딸들도 그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히 지난 2000년 홍 대표가 간암을 선고받았을 때는 두 딸 모두 간이식을 자청할 정도로 효심 깊은 딸들이다. 당시 홍 대표는 이식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큰딸 빛나 씨로부터 간이식을 받았다. 이들 부녀의 눈물겨운 사연은 언론에도 보도되며 큰 화제를 낳았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에서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로 있는 큰딸에 이어 작년에는 둘째 딸 하나 씨까지 박사학위를 땄다. 청능사인 홍 대표와 청각학 석사인 김 원장, 그리고 청각학 박사이자 교수로 있는 큰딸에 이어 작은딸까지 박사학위를 받은 덕분에 홍 대표의 가족 중에는 청능사, 청각학 석사·박사, 교수가 모두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아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또 아버지 일을 돕다 보니까 자연히 이쪽 길로 들어서게 되었죠.”(홍빛나·하나)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늘 아버지의 곁에서 일을 도왔던 딸들이다. 특히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귀를 대신해 센터를 찾아온 이들의 상담을 돕다 보니 일찍부터 소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더 많이 깨닫게 된 딸들이다. “대화할 때 왜, 상대방의 말이 잘 안 들리면 네? 하고 되묻곤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한 번 ‘네?’ 했을 때는 다시 이야기해 주지만 두 번, 세 번 거듭 ‘네?’라고 되물으면 짜증을 내고, 또 아예 대화를 포기하는 일도 많죠.”(홍빛나) 홍 교수도 아버지가 센터를 준비할 때 곁에서 일을 도우며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간판의 위치를 어떻게 할까’, ‘바닥 공정은 어떻게 할까’를 묻는 인부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그런 아버지를 마치 무언가 부족한 사람인양 자기네들끼리 비웃는 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가슴 아팠다는 그녀다. “지난 세월 동안 쭉 그렇게 살아오셨을 거 아니에요. 그 생각을 하니, 너무 속상하더라고요.”(홍빛나) 처음에는 오직 공부, 그 자체가 좋아 공부했던 홍 교수지만 그날 이후 보다 진지한 태도로 청각학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부분 이전에 ‘청각 장애’가 무엇인지,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부터 가르치려고 하죠.” 잘 들리지 않는 당사자는 부쩍 예민해지고 주위의 반응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가족들 역시 마음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저도 그랬으니까요. 잘 안 들리니까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더라도 꼭 내 이야기를 하며 비웃는 것만 같고 사람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내 흉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죠.”(홍영희)

하지만 언제나 곁에서 귀가 되어주고 손과 발이 되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는 홍 대표다. “우리가 그런 점을 잘 알다 보니까 센터에 오신 난청을 가진 분들이나 그 가족 분들이 상담을 하면서 너무 고마워 하세요. 정말 당사자와 그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홍하나) 하나 씨는 언니에 이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청각학을 공부하게 됐고 아버지와 이모처럼 청능사(聽能士·audiologist)로, 또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 종로점의 원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난청&보청기 센터에서는 단순히 보청기만 파는 게 아니에요. 난청 정도를 평가하고 개개인의 귀 성능에 맞는 보청기를 맞추고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법, 보청기를 낀 생활에 적응하는 법 등 재활을 돕는 게 바로 우리 청능사들이 하는 일이죠.”(홍하나)

홍영희 대표(맨앞) 1948년생. 서울시 본청 및 구청 근무. 93년 단국대 행정학 석사. 98년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 청각학 연구과정 수료. 2000년 서울시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 한국청능사자격검정원 정회원. 한국청각언어재활학회 정회원. 청능사.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 대표(현).

김정순 원장(뒷줄 왼쪽) 1964년생.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활학과 청각학 석사. 온누리 난청&보청기 센터 천호점 원장.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겸임교수. 한국청능사자격검정원 재무이사. 원광대 동서보완의학대학원 자연치료요법학과 외래강사. 대불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겸임교수.

난청, 젊은 사람들도 주의해야

“아직도 보청기는 나이 든 분들이나 귀가 안 들리는 장애인들만 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의외로 젊은 분들 중에서도 난청 때문에 고통 받거나 보청기로 도움 받는 분들이 많아요.”(김정순) “주위에서 사오정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많다면 난청을 의심해 보는 것도 좋아요. 흔히 자기 자신은 ‘딴생각해서 못 들었어’라고 생각하지만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거든요.”(홍하나)

“특히 요즘은 장기 복용하는 아스피린이라든지 항생제·이뇨제·항암제 등 약물 때문에 난청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또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작용 중 하나도 난청이고요. 그러니 약을 복용 중 이명이 들린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아요.”(홍빛나) “사람들은 눈이 나쁘면 안경을 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잖아요. 그런데 그것 아세요? 귀는 눈보다 훨씬 더 예민한 부위라는 것을요. 게다가 귀는 많이 나빠지게 되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 귀의 성능이 의심될 때는 꼭 전문가와 상담하셔서 도움을 받으세요.”(김정순)

각자 떨어져서 일하지만 저녁 무렵에는 한데 모여서 센터에 찾아온 환자들의 사례를 토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연구를 아끼지 않는 이들의 꿈은 청능사로서, 또 교수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청각 장애로 고통 받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죠.”(홍빛나·하나) “가끔 형편이 안 되는 분들에게는 무료로 보청기를 건네기도 하는데요. 앞으로도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죠.”